산하세계문학 13권.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떠도는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난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 그리고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인 알란이라는 개와 함께 집을 떠난다. 다정하던 이웃들이 괴물로 변했기 때문이다. 셋은 달리고 또 달린다. 이들의 발길이 거치는 마을과 도시와 나라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작품은 소년의 1인칭 서술시점으로 진행된다. 소년의 눈을 통해 숱한 사람들과 온갖 사건들이 그려진다. 이야기의 분위기는 사실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고 우화적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긴 여운과 함께 여러 질문들을 남긴다. 우리는 날마다 갈 곳 없는 난민들에 대한 소식을 보고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삶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라도 하고 있을까? 아니, ‘그들’이라는 호칭에는 벌써 우리의 냉담함과 편견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탈출>은 이런 심각한 주제들을 품고 있지만, 잘 빚어진 구성 덕분에 서정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장면들이 저마다 독특한 빛깔을 내면서 맞물리는 까닭이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과 강렬하고 인상적인 그림이 서로 스며들면서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