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이고 엽기적인 추리소설이면서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과 윤리를 다룬 진지한 심리소설. 1886년 1월에 출간된 직후 대중소설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주제로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은 한편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이 작품은 끊임없이 드라마, 연극, 영화, 오페라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얻어오고 있다. 얼핏 엽기적 소재를 다룬 대중적 공포소설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원작을 찬찬히 뜯어보면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선과 악에 대한 깊은 이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도덕적 위선에 대한 고발 등 철학적인 주제와 당대의 사회윤리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딕소설과 추리소설 형식을 절묘하게 결합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작가가 선정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품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 선과 악의 갈등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 하이드로의 변신에 담긴 윤리적 신학적 문제로 옮겨간다. 소설에서 지킬이 표리부동한 이중인격자가 되고 자신의 욕망을 하이드라는 별개의 존재를 통해 해결하려 한 가장 큰 이유는 야심과 욕망의 솔직한 발현을 허용하지 않는 당대의 도덕적 편협성, 즉 당대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적 도덕률 때문이다. 하이드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혐오하지만 지킬은 하이드로의 변신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원래 모습이라며 자신의 일부라고 처음엔 오히려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