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걸려온 전화 글을 쓰게 된 계기 어느 날, 저자는 한 노인 분한테서 전화를 받는다. “이 선생의 《이산 정조대왕》을 읽었습니다. 여기 태안입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 태안향교의 전교로 봉직하고 퇴임했다는 그 노인께서 덧붙이신다. “나는 독자들에게 우리 고향의 뜻깊은 역사를 알려주고 싶어요. (…) 당신이 좀 더 흥미롭게 써주시면 좋겠소.” 이렇게 해서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다 어릴 적 놀았던 바닷가가 떠올랐고 안흥량의 험로를 피해가기 위해 개착했다는 운하가 생각났다. 고려, 조운이 끊기자 나라가 망했다 고려의 재정의 근간을 이루던 조운(漕運)이 무신란(1170년) 이후 정치적 기능이 약화되어 조운에 대한 행정력이 떨어지고, 원·명 교체기에 권력 공백 상태가 발생하면서 왜구의 침탈이 잦아졌다. 우왕 재위 14년간 왜구의 노략질이 무려 266회나 되었다. 신진사대부의 지원을 입고 실권자로 등장한 이성계는 조운 부활에 사활을 걸었다. 해운과 염철사업에 능한 왕강과 조운 정비에 일가견이 있는 노숭을 기용해 제도를 정비했다. 왕강은 운하 개착 사업을 이끌었고, 노숭은 조거(漕渠)와 수참(水站)을 설치하고 조전성(漕轉城) 축성을 제안했다.